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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기

남목 목관비, 망조대

방우식 2018. 6. 11. 05:43

일시; 18년06월03일

동행; 마눌




남목 목관비


옥류천 사거리 옆, 남목 초등학교

남목초등학교 정문 앞에는 노거수 팽나무가 200년의 세월을 견디며 푸르게 자리하고 있고...

정문 맞은편, '남목 청소년 문화의 집' 한쪽에 서 있는 남목 목관비에는

조선시대에 500년간 울산 동구 전역이 국영 목장이었는데, 이곳 남목이라는 지명은 남쪽의 커다란 목장이란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이 목장을 관리하던 감목관이 이곳에 있었는데 1950년대 후반까지도 목조건물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남목 목장을 관리하던 종6품 벼슬의 감목관 윤졸과 목관 변정엽의 선정비는 남목이 목장지대로 관리됐다는 중요한 문화 자료로 평가되고. 또한 남목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나타내 주는 비석이기도 하다.

목관비 앞에 서 있는 전봇대가 예쁘게 생겼다, 세상에서 요거 하나 뿐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망조대

남목시장 입구 우측의

도로변에...

서인충 장군 유적지인 망조대가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서인충 장군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란다.

1592년 4월 13일 부산포로 상륙한 일본군은,  동래성을 함락시키고 연이어 울산을 점령하고 살육과 약탈을 자행했다. 

서인충은 서몽호와 더불어 의병결사대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그해 9월에 인망이 두터운 전 만호(前萬戶) 김태허가 군수서리에 임명되고 1개월이 조금 지나 수천 명의 의병부대가 조직되었는데 김태허는 언양현감 박홍춘을 서면장, 전 훈련봉사 전응충을 남면장으로 삼았고, 주사장(舟師將, 해군지휘관)으로 임명된 서인충은 선박을 모으고 수리하여 격전을 벌였다. 그해 10월 적병이 6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기장과 아리포에서 울산을 향해 진입해오자 이를 공격하여 적선 2척을 침몰시키고, 적군 30명의 수급을 베었다.
1593년 2월에는 경주 봉길리 앞바다에 정박해 있는 일본 함선 50여 척을 공격하고, 부산, 동래, 기장, 서생, 개운포, 태화강 하구 울산만, 경주 봉길리, 이견대, 장기 등 동해안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서인충은 1593년 10월 15일 훈련원 정(訓練院正), 1594년 10월 15일 부산 다대포 수군첨절제사, 1596년 3월 7일 부산진 수군첨절제사에 임명했고, 1598년(선조 31) 12월 서인충을 부산진 첨사에 재임명했다.
1599년 12월 27일 경주에서 열린 특별 포상잔치에 참석하여 울산출신 의병 165명과 함께 임금의 은전을 하사받았고
1600년 울산의 전응충, 박홍업 등 10명과 함께 선무원종공신 1등에 올랐다. 공로를 인정받아 멸악등위(滅惡等位, 적을 무찌른 등급) 4석전(四石田)을 하사받았다. 

--다음 백과 참조-

1610년 6월 10일 출생지 남목에서 57세를 일기로 별세했으며,1784년(정조 8)에 증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에 증직되고, ‘망조당’이라는 호를 받았다.

동축사 아랫쪽에 장군의 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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