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
아부지
어무이
울 엄마와 나 어릴적 사진이다 기억이 날듯 말듯한 네살때 쯤으로 생각이 되는 어느날 이날이 장날이었던 듯 사진관에서 지금의 프래쉬 대신 화약을 터뜨려 '펑'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하고 연기가 흩어졌는데 화약을 터뜨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던 생각이 나고 그 다음 장날 때 엄마를 잠시 잃어 버리고 시장 길거리에서 울고 있을 때 이 사진을 찾아 온 것으로 생각이 난다 7남매의 딸 많은 형제들 중에 내리 딸만 낳다가 내가 테어난 것이 우리 엄마에게는 자부심이고 자랑이었고 이 사진을 찍을 때는 내가 엄마의 전부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초등학교 몇 학년이었는지 학교를 다녀오다 머리가 아프다고 들판 가운데를 흐르는 냇강을 건너 버드나무 그늘 아래 누워있으니 같은 동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등에 업고 집에 갔던 생각이 나고 감기가 들어 아프다고하면 등에 업고 달래던 생각이난다. 장가를 들었을 때는 가난한 살림에 줄것이 없어 안타까워 하던 모습이 생각 난다. 이제 엄마는 내곁을 떤난지 11년이 넘었다 엄마는 나에게 모든것을 주었는데 나에게 엄마는 나의 전부가 아니었고 엄마에게서 받은 수많은 것들 중에 돌려 드린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세월을 되돌릴 수 있다면 잘 할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더 잘하기 보다는 지난 불효를 반복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의자에 기대어 앉은 분이 아부지,
의자에 앉은 분은 같은 마을 분으로
서울로 이사를 간 정씨 어르신
집 뒷밭에 사과나무를 심는 모습으로
이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시던
형님께서 카메라를 가지고 와
누님들과 동생, 내 사진까지
찍었던 생각이 나는데
내가 내살때 쯤이 아닌가
싶다.
그 당시에는 초가 지붕이었는데
내가 테어나기 훨씬 전에
부모님께서 손수 지으신 것으로
들었던 것 같다.
지을 때 초가 지붕이었는데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훨씬 전에
초가를 걷어내고 기와로 지붕을 올렸는데
토기와를 이으고
기와 틈사이와 벽에 횟가루를 바르고 하던 생각이 난다.
공사를 마무리 하시고
무거운 토기와를 올려 집이 약한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말씀을 하시던 생각이 나는데
이집은
1990년도 후반 쯤에 들어 윗채가 무너지고 말았다.
어제 대구에 올라가
정서방의 큰딸 시집 보내는 결혼식에 참석하고
동생의 건강하던 셋째 딸아이가
급한 수술을 하고 입원해 있는 영대병원을 다녀왔다.
둘째아이를 임신중에 한 수술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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