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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기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방우식 2007. 10. 24. 16:37

일시; 07년 10월 18일  목요일   구름 조금

인원; 10명

 

 

 

대한민국 임시 정부

 

1919년 3·1운동 이후 4.13일 상해에서 조직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등 6개 지역 이상에서 임시정부가 조직되었고 이후  1919년 9월 15일 통합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여러차레의 이전을 거쳐 1926년 보경리 4호(현 로만구 마당로 306롱 4호)로 이전 7년간 집무를 했던 곳으로 지금까지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곳이다. 

1932년 1월 8일 김구가 주도하는 한인애국단의 이봉창 의사의 일왕 폭살의거가 실패로 끝나고, 4월 29일 상하이의 홍구 공원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축하와 1·28상해사변 전승 축하식장에서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일본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등 20여 명이 살상되자 일제의 보복을 피하여 1940년까지 8년 동안 자싱[嘉興],항주,소주,전장[鎭江],남경,창사[長沙],광주,류주,계림,치장 등 10여 곳을 이동하게 되었다.

윤봉길의 의거로 장제스 국민정부로부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받게 되었고,  1933년 5월 김구와 장제스는 난징 회담에서 중국 낙양군관학교에  11월 5일부터 한인특별반을 설치했다,

1940년 9월 27년 마지막 5년을 충칭에 정착한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창설하여 총사령 지청천(池靑天), 참모장 이범석을 중심으로 1945년 11월 귀국할 때까지 직할 무장부대로서 활동 하였으며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중국에 이어 12월 10일 공식적으로 '대일선전포고'를 하였고 1942년 3월 1일 중국·미국·영국·소련 등에 대해 임시정부의 승인을 요구하여 1944년 프랑스·폴란드·소련 정부는 승인을 했다.

 

 

인구 2200만 명의 중국에서 세번째로 큰도시 부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산다는 상하이 제각각 건물양식이 다르다는 이곳 상해

마당로 306롱 4호(구 보경리 4호) 왕복 2차선 도로의 1925년에 건설된 중국 근대식 석고문 구조의 건축물로  보수 공사를 위한 시설들이 설치 되어 있는 한켠, 횡단 보도 건너편에 제복을 입은 근무자 둘이 서 있는 좁은 골목 안에 위치한 임시정부 청사 앞 낡은 아파트 베란다에 길게 내민 빨래 건조대에 펜티와 옷 가지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13시05분.

 

 

 

 

 

 

 

현관 입구에서 입장권을 내고 신발에는 비닐 덧신을 신은 후에야 입장을 할 수 있는데 한내 해설사 아가씨의 안내에 따라 1층에서3층까지  집무실, 화장실,사무실, 식당, 침실, 전시실 등을 돌아보고 기념품 매장을 통해 밖으로 나올 수가 있는데 무슨 이유에서 인지 모르겠지만 해설사 아가씨의 제지로 인해 사진을 찍지 못 했다.

화장실을 지날 때는 북한산 산행 중에 의문사 한 장 준하 선생이 쓴 글 중에서 일본 군을 탈출하여 천신만고 끝에  이곳에서 김구 선생을 만나 뵙고 칸막이와 문이 없는 화장실에서 얼굴을 마주보며 볼일을 보면서 굉장히 민망했었다는 이야기가 생각 난다.

13시30분, 임정청사를 돌아보고 버스를 타러 가다가 신축 건물의 공사장에 우리의 스타 배 용준이 노란 안전모를 쓰고 중국 근로자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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