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17년 11월05일 일요일
위치; 감은사지; 경북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이견대;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해파랑길 11코스)
감은사지
경주에서 추령재를 넘어 멀리 떨어진 동해 바다가에 위치 해 있어 찾는 사람이 드문데...오늘은 사람들이 많은편이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오래전, 이곳에 왔을 땐 탐방하는 사람이라고 있었던지 없었던지..., 썰렁했던 걸로 기억된다.
감은사는 원래 문무왕이 왜병을 물리치기 위해 짓기 시작했으나 중도에 죽자 그의 아들 31대 신문왕이 아버지 은혜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682년(신문왕 2)에 완성한 절로서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는 곳이다.
감은사지, 사적 제31호
주차장에서 본 감은사지
용당리, 탑 마을... ?
관람로를 마루를 깔아 깔끔하게 만들어 편안하게 관람 할수 있도록 만들었다.
동탑, 동탑과 서탑은 국보 11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높이 13.4m로 동탑은 1996년에 해체 복원했다고 하고
서탑은 1959년~1960년에 해체 복원을 했다고 한다.
금당터,
용이 된 문무대왕이 드나들 수 있도록 금당 밑에 동쪽으로 구멍을 만들었다고...
강당터...주춧돌 인듯, 여기저기 반듯한 돌이 보인다.
요기는 배치도를 보면 회랑터 인듯 싶지만...??
용당 탑마을 당나무
문화관광 해설사도 상주 하는 듯...
사적 제 31호, 국보 112호.
마을에서 본 주차장 방향
뒷편에서 본 감은사지
이견대
그냥 무심히 몇 번 스쳐지나 갔던 곳인데...,
동해구(東海口), 동해의 입구, 신라로 통하는 바다의 관문,
이곳은 서라벌에서 추령재를 넘어 동해에 이르는 최단거리이기도 하다
동해구에는 "세 가지 중요 유적이 남아 있는데,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문무대왕의 유골이 있는 해중릉 대왕암과, 그것을 바라볼 수 있도록 쌓은 이견대, 그리고 부왕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완성한 감은사는 각기 삼각형을 이루며 위치해 있다. 또 석굴암의 본존불의 시선이 바로 이곳, 동해구를 향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 바다와 땅은 신라 으뜸의 성역인 동해구이다.
통일의 영주 문무대왕이 왜병을 진압코자 창건한 감은사와 승하 후 호국룡이 되기를 유언하여 뼈를 묻은 해중릉 대왕암과 아들 신문왕이 사모하여 해안에 쌓은 이견대 등 세 유적이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 바다는 문무대왕과 김유신 장군이 함께 전하여 준 신라의 국보 만파식적 설화의 현장이요, 또 그 후 효성왕이 이 곳에 산골(散骨)하니 경덕왕은 김대성으로 하여금 전세 부모의 복을 빌어 토함산에 지금의 석굴암인 석불사를 세워 거기 모신 동양 제일의 대불로 하여금 똑바로 굽어살피게 한 바로 그 땅이요 바다이기도 하다."
이견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인용된 이 절 안에 있는 기록에는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고자 감은사를 처음 창건하였는데, 끝내지 못하고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되었다. 아들 신문왕이 681년 7월 7일에 왕위에 올라 682년에 공사를 끝냈다.
금당(金堂) 뜰 아래에 동쪽을 향하여 구멍을 하나 뚫어 두었는데, 용이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뒤에 용이 나타난 곳을 이견대라 하였다고 한다. 682년 5월에는 왕이 이 곳에서 용으로부터 옥대(玉帶)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만들 대나무를 얻었다고 한다."<위키백과>
대한민국 사적 159호
1970년 발굴로 건물지를 확인하고 197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 감은사지는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감은사지 정류장(감은사지), 대본삼거리 정류장(이견대)에150번, 150-1번 버스가 다니고 130번 버스도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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