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12년 09월01일
동행; 옛 친구들
북한에서 경영하는 식당인 평양 랭면관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앙코르 유적지 관리소를 통과하면서 관리 직원의 입장권을 확인 후 앙코르 톰의 남문 앞 주차장에 도착하고 13시27분.
◈ 크메르(khmer) 제국
진랍(眞臘, 첸라(Chenla))은 6세기 메콩강 중앙유역에서 일어 난 크메르 족의 나라이다. 진랍은 초기에 푸난의 속국이었으나 차츰 강대해져 7세기에는 역으로 푸난을 멸망시키고 영토를 지금의 중국 남부에서 베트남 남부까지 확장하였다.
사료상으로는 598년에 자야바르만 1세가 제위하였다고 하고 자야바르만 1세가 죽은 후 706년에 육첸라(북) 수첸라(남)으로 나뉘어져 세력이 약화 되었는데 8세기 말에 자야바르만 2세(802년-850년)가 국가를 통일하고 프놈쿨렌에서 캄푸자(kambuja) 왕국을 건설 하였다.
야소바르만 1세(889-910년)는 앙코르에 최초의 수도인 야소다라프라를 세웠고 프놈바겡 등, 사원을 건립하여 전성기를 이루었고 수르야바르만 2세(1112-1152년)는 앙코르 와트를 건설하였다.
1177년 참족(베트남)의 침공으로 수도인 앙코르가 함락되었는데 자야바르만 7세(1181-1201년)는 참족을 몰아내고 남쪽에 앙코르 톰을 건설하였고 바푸온,타프롬, 프레아칸, 반테크다이 등, 사원을 세우고 대승불교를 받아드리며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자야바르만 7세의 사망이후 아유타야족(태국)의 압박이 시작되면서 진랍은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4세기 후반에 아유타야 왕조의 세력이 커지면서 진랍으로 쳐들어 와 1432년 앙코르를 포기하고 수도를 프놈펜으로 옮겼으며 15세기에 크메르 왕조의 진랍은 멸망하고 말았다. 16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캄보디아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크메르 왕국이 궁금한 생각이 들어 이곳저곳에서 참조)
◈ 앙코르톰 (Angkor Thom)
앙코르 와트에서 북쪽으로 1.7km떨어져 있는 앙코르 톰은 "거대한 도시"라는 뜻으로 한때는 100만명의 인구가 거주하였다고 하는 너비 약 100m의 해자와 높이 약 8m의 라데라이트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한변이 3km인 정사각형 성곽도시로 성 중앙에 있는 "바이욘 사원"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뚫린 두 개의 도로가 있으며 북, 서, 남문과 동쪽에는 승리의 문과 사자의 문, 등 5개의 문이 있다.
12세기 크메르 왕조가 몰락하기 직전인 자야 바르만 7세에 의해 지어졌으며 앙코르의 미소라는 바이욘 사원을 중앙으로 피미아나카스, 파푸온등 사원과 코끼리테라스가 있으며 북쪽에는 왕궁이 자리하고 있다.
◈ 바이욘 사원(Bayon)
자야바르만 7세 때 세워진 앙코르 톰의 중앙사원으로 앙코르 와트 보다 약 100여년이 늦게 세워진 크메르 왕조의 마지막으로 세워진 사원으로 사원의 내,외부에 1.200m의 부조가 양각조각 등이 있으며 사원 곳곳에 54기의 석탑에 200여개의 얼굴상이 조각되어 있다.
"앙코르의 미소"라고 불리는 얼굴 조각상은 자신을 관음보살과 동일시 했던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고도 한다.
남문에는 높이 22m의 석탑에서 미소띤 얼굴이 굽어보고 있는데 세월의 풍상에 얼굴상이 많이 삭았다.
해자를 건너는 다리 양쪽에는 뱀을 잡고 선신과 악신이 줄다리기를 하는 듯한 모습의 나가(Nagas)상을 다리의 난간으로 세웠는데 나가(Nagas) 는 산스크리스트어로 뱀을 특히 코브라를 뜻하는 말이다.
해자, 폭이 100m라고...
13시35분, 남문을 통과하면 바이욘 사원까지 곧게 뻗은 길이 이어지는데 우리 일행는 걸어서 갔다.
천천히 걸으면서 수십m의 수고를 자랑하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거진 길을 가는동안 요금이 3만원이라는 툭툭이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가기로 한것이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이 잡초를 제거하고 청소하는 모습.
13시56분, 바이욘 사원은 공사 중인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미리 우산을 두개를 준비해 온 마누라 덕분에 비를 덜 맞을 수 있었는데 빗줄기가 엄청 굵다.
관람객들이 사원내부에서 비를 피하느라 사원이 조용하다.
건물 전체가 3층 구조로 1층은 인간의 영역으로 일반백성이 출입을 할수 있었고 2층은 신의 영역으로 왕과 사제만 출입할수 있었다고 하며 3층은 지성소로 되어있고 중앙 탑의 높이가 43m에 이른다고 하며
엄청 쏟아진다.
불상 앞에서 피우는 향내가 코를 자극하고...
잠시 비가 그친 사이
54기의 탑에 200여개의 얼굴 조각상이 관음보살과 자신을 동일시 했던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고도 하는데 허물어지고 37기의 탑만 남아있다고 한다.
수로인듯한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바쁜지... 잠시 살펴 볼 틈이 없다.
요기를 잠깐 들여다 보는 사이에 일행들은 가이드를 따라 아래 사진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 벌써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복원공사 중이지만 곳곳에 복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기둥에는 인물상들이 양각되어 있고... 불상 옆에는 향을 든 여인네가 있는데...
먼저 간 일행들이 문 밖으로 보인다.
북쪽으로 나온듯 ... 되돌아 본 바이욘 사원
14시13분, 좌측 저쪽에 불상이 보이는데...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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