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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과하지욕(袴下之辱 )/한신의 용기

방우식 2015. 2. 15. 16:21

 

 

 

 

 

 

 

과하지욕(袴下之辱 )이란 ?.

 

한신(韓信)은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한초삼걸(漢初三杰: 소하, 장량, 한신)"의 한 사람으로
배수진(背水陣)과 사면초가(四面楚歌), 다다익선(多多益善), 필부지용(匹夫之勇), 등 고사성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지만 젊었을 때 그는 밥을 빌어먹을 정도로 가난했고 어머니의 장례식도 치를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고 한다. 

고향 회음(淮陰 지금의 강소성)에서 있었던 일이다. 
불우한 젊은시절 한신은 항상 칼을 차고 다녔다고 하는데 
그것을 보고 불량배들이 길을 막고 
"너는 칼을 차고 다니니 용기가 있으면 나를 한번 찔러봐라, 
아니면 내 바짓가랑이 밑으로 지나가라 "고 하면서 시비를 걸었다.
한신은 모욕을 참으며 그 불량배의 바짓가랑이 밑으로 기어지나가
사람들에게 겁쟁이라는 비웃음과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바짓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는 치욕을 참는다는 뜻의 과하지욕(袴下之辱 )의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후일 한신은 한나라의 개국공신으로 초왕(初王)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옛날 그에게 모욕을 주었던 건달을 불러 와
"그때 내가 너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너를 죽이면 내가 살인자가 되어 도망 다닐 수밖에 없어 

내 꿈을 이룰 수 없을 것이므로 참았다." 라고 하며
그에게 치안을 담당하는 중위(中尉)라는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또 다른 인욕(忍辱)의 예는  
월왕(越王) 구천이 오왕(吳王) 부차의 포로가 되어 
말똥을 치우고 심지어는 부차의 대변을 찍어 맛보기도 하며 자신의 뜻을 숨기고 굴욕의 세월을 보냈던 역사가 있고

우리나라에도
조선조 말 60년이 넘는 안동김씨들의 세도정치로 왕손들의 목숨이 위태로웠을 때 
흥선 대원군은 
안동김씨의 세도가들 앞에서 기생의 치맛자락으로 기어다니기도 하며 술을 얻어 먹기도 하고 

'상갓집 개'라는 손 가락질을 받으며 투전판을 들락 거리는 '파락호'로서의 삶은 

자신과 자식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과하지욕(袴下之辱)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신이 화를  참지 못하고 불량배를 칼로 베었다면

구천이 굴욕을 참으며 부차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면

흥선 대원군이 파락호의 생활로서 자신을 감추지 않았다면... ...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고 목숨까지도 잃었을지도 모르며

지금의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 때의 분노를 참아 이겨낼 수 있는 용기

비웃음과 조롱을 감내 할 수 있는 용기

미래를 위해 오늘의 굴욕을 참을 수 있는 용기가 

참다운 용기이고 진정한 패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홀로 우뚝 서기는 쉬워도 낮추어 굽히기는 어렵다.

뜻이 있어도 세상이 그 뜻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 좌절의 역경 앞에서도 묵묵히 자신을 기르며 때를 기다릴 일이다.

그러나 그 굽힘이 뜻을 꺾는 굴종일 수는 없다.

세상에는 지고도 이기고, 이겼지만 지는 그런 승부도 있다.

《채근담》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