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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황새바위 순교성지

방우식 2013. 5. 15. 15:52

일시; 13년 05월 11일 토요일

동행; 4구역

위치; 충남 공주시 왕릉로

 

 

 

황새들이 많이 서식하여 황새바위, 또는 목에 커다란 항쇄 즉 칼을 쓴 죄수들이 이곳에서 처형당하였다고 하여 항쇄바위라고도 한다.

당시 충청 관찰사가 머물던 감영이 있던 이곳에서는 1801년 신유박해때 부터 시작하여 1839년 기해년, 1846년 병오년, 1866년 병인년 박해를 비롯한 마지막 순교자를 낸 1879년까지 100여년 동안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각지에서 끌려와 사학죄인이라는 명목으로 처형을 당하였는데 이름조차 알수 없었던 순교자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어 '그 수는 오직 천주님만이 아시느니라'고 했다는데 공주의 감영록이 발견되고 공개되면서 내포 사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1759~1801) 등 1503위로 알려진 가운데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는 손자선 토마스등 현재까지 337위의 이름이 밝혀지고 이중 20세미만의 순교자도 20여명에 달하고 10세의 어린 순교자도 여러명 인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1980년 황새바위 성역화 사업 추진위원회가 결성된 이후 1980년 황새바위 언덕 부지 8146㎡(2464평)를 매입하였고, 1985년 순교자 248명의 이름을 새긴 무덤경당 및 순교탑을 건립하였으나 그 후 각종 관련 기록을 확인 결과 89명의 이름을 더 찾아내 이름이 확인 된 순교자는 337명이 되었고, 1998년 십자가의 길,  2009년 성당을 지었으며 2008년12월22일 충남 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앙생활도 하는듯 마는듯 성당에서는 냉담자로 분류된지 오래이고 '이래서는 안되는데...'하면서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차일피일하고 성사를 미루고 있는데 이런상태가 언제까지 갈런지, 죽을 때까지 이럴까 내심 걱정되기도 한다.

내가 속한 4구역에서 그동안 추진 해 오던 성지순례를 떠나는데 마눌의 도움으로 동참하게 되었는데 06시05분 예정시간 보다 5분 늦게 출발, 두차례 휴게소에 들러 휴식을 하고 정확히 4시간 후인 10시 05분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에 도착한다.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이번이 두번째로 처음 이곳에 왔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한 25년 쯤은 된것 같다.

미사 시간이 11시로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십자가의 길' 기도 부터하기로 하고 성지순례의 첮 일정을 시작하기로 한다.  

10시05분 황새바위 순교성지 입구에 도착했는데 '아차' 집을 나서면 늘 들고 다니던 손아귀에 들어가는 작은 똑딱이 카메라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해상도가 낮은 2G 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어 버스 차장 밖으로 보이는 입구의 모습을 찍어 본다.   

입구 계단을 올라서면 마주 보이는 성당

좌측으로 그리 가파르지 않은 계단길이 조성되어 있고 예수님께서 두팔 벌려 맞아 주시고

곧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곧 바로 십자가의 길이 시작된다.

1처부터 14처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의 고통들이 양각으로 새겨져 화사한 봄날에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으로 둘러쌓혀 있고   

 

요기 쯤 왔을 때 뒤에서 들려오는 기도소리에 돌아보니 또 다른 한 팀이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오고 있다.

무덤경당 주위에 펜스를 설치 해 놓은 것이 보수 중인듯 한데 지금에 와서 생각이지만 내부에 건립 당시에 새겨진 248명의 순교자 이름을 추후 확인한 89위의 순교자를 더하여 337명으로 수정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덤경당 앞에 나란히 서 있는 다듬지 않은 투박한 열두개의 빗돌은 12사도를 상징하며 이름없이 순교하신 신앙 선조들의 묘비석이다.

순교탑의 마지막 계단위에 비치는 태양을 찍었는데 태양이 십자가로, 또는 비둘기로 보인다.

순교자들은 참수, 교수, 아사, 매질 등으로 죽어 갔는데, 교회사가 달레(Dallet,Claude Charles)는 '옥의 벽에는 위에서부터 한 자 높이 되는 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 매듭으로 된 밧줄 고리를 죄수 목에 씌우고 밧줄 끝을 벽의 구멍으로 내려보낸다. 그리고 옥 안에서 신호를 하면 밖에서 사형 집행인이 밧줄을 힘껏 잡아당긴다. 희생자가 죽으면 시체를 밖으로 끌어내어 장례도 지내지 않고 밭에 내버려 둔다.' 고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순교탑 앞에 전시되어 있는 구멍 뚫린 바위는 형구의 일종으로 구멍에 밧줄을 넣어 순교선조들의 목에 걸어 반대편에서 잡아당겨 죽였다고 한다.

저 무서운 형틀의 고통을 지나 순교탑에 보이는 계단을 올라 그렇게 바라던 하느님 나라로 올라간 듯 생각되어지기도 한다.

 

 

12개의 빗돌과 무덤경당,

 

 

대경당과 사무동

도로에 차량들이 밀려 조금 늦게 도착하는 서울지방의 교우들을 기다리다 미사를 드리는대 최 비오 신부님의 빠른 말씀에도 마음속 깊이 새겨져 들어오는 강론이 겨우30분 정도로 짧게 느껴지는데 시계를 보니 무려 약 한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게 강론을 들으며 숙연해 하기도 하기도 하지만 웃음소리도 자주 들리는데, 어쩐일인지... 나는 왜 눈물이 자꾸 나는지 혼났다.

 

미사가 끝나고 미리 예약을 해 둔 '몽마르뜨<mont martre, 순교자의 산>'라는 이름이 붙여진 식당에 올라가 박찬호가 다녔다는 공주 중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는 학생들을 내려다 보며 맞있게 식사를하고  

 

 

 

야외제대

뒤에 세워진 12개의 투박한 돌 뒤에는 이름이 확인된 337위의 순교선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충남의 홍주, 예산, 해미, 덕산, 신창, 홍산, 연산, 청양, 공주, 이인, 탄천과 충북의 청주, 진천, 연풍, 옥천등 충청도 지방 뿐만 아니라  전라도 전주, 광주, 경기도 죽산, 포천, 그리고 한양의 교우들이 공주에 와서 순교 하였다고 하는데 서울의 '새남터'보다 더 많은 선조들이 이곳에서 희생된것 같다.

가장 나이 어린 순교자는 김춘겸의 딸로 당시 불과 10살 밖에 안 되었고, 최연장자는 남상교(아우구스티노)로 당시 84세이며 20세 미만의 순교자도 20명이나 된다,

순교자들의 이름에 김성연의 딸, 김춘겸의 딸과 친구들이 불과 10세의 어린아이들인데.. 순교자들을 고문을 하는 도구나 방법을 들을 때나 사형을 시키는 모습이나 형구들을 보면 옛날 관리들이 엄청 잔인 하기도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곳에서 순교자들이 처형될때 맞은편에 보이는 공산성 '산 위에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마치 병풍을 친 모양으로 둘러서서 구경을 하였다'고 한다.

'처단한 순교자들의 머리는 나무 위에 오랫동안 매달아 놓아 사람들에게 천주학을 경계하게 하였으며, 시신은 일반 죄인들과 섞인체 제민천에 버려져 금강을 순교자의 피로 물들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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